2007년 07월 18일
Wheel of fortune-Part1-14
드디어 열 네번쨰 이야기.
잠수기간이 길어서
죄송합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쇼.(맹호락지세X2)

아무런 생각 없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잔뜩 취해있던 라울은 자신의 뺨을 스치고 날아온 화살에 일순간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화살이 날아온 것은 자신의 뒤 쪽. 그러나 등을 돌려 주변을 살펴봐도 화살을 날린 사람으로 생각되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귀신의 장난질이라고 생각되는 이 상황. 한참 주변을 둘러보던 라울은 날아온 화살에 무언가 편지 같은 게 묶여져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허겁지겁 그걸 펼쳐 봤다.
전략.
기사단으로서의 의와 맹세를 더럽힌 자에게 고합니다.
명가의 후광을 빌어 기사단의 이름에 먹칠을 한 것도
모자라 악행을 일삼고 다니는 그대의 모습에 저, 레피나
기슈타인은 기사단의 죽어간 동료들의 원한을 풀기 위해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시간은 내일 정오.
장소는 이 도시의 북문 앞.
제멋대로 날뛰는 악에게 하늘의 심판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 목을 씻고 기다리고 계십쇼.
그걸 끝까지 다 읽은 순간 라울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모조리 죽여 버렸어야 하는 건데. 조만간 기사단에서 의문을 품고 이곳까지 본대를 파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자신이 돈으로 고용한 도적들 따위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릴 것이다. 수룡왕의 기사들이라는 작자들은 고지식하니까, 자신이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면 가문과는 상관없이 자신을 죽이려 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살아남을 확률은 극히 희박해 진다. 일전에 사건을 벌여 빼앗은 물건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자신이 아는 갖은 방법을 동원해도 그걸 쓸 방법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바에는 그 계집을 죽이고 나는 죽은 것처럼 꾸미면 그만이야. 그걸 쓸 방법은 나중에 천천히 궁리해도 상관없겠지. 그걸 쓸 수 있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날 깔볼 수 있을 자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편지를 구겨서 한 손에 쥔 라울은 주점을 나섰다. 보름달이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는 것이 꽤 깊은 밤인 듯 했지만 지금 그에게 시간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잘난 척 하는 그 여자를 박살내는 것이었으니까.
“그럼, 기대하고 있으라고. 멍청한 년.”
다음날 정오. 도시의 북문 근처에서 라울을 기다리고 있는 세 사람. 진은 아무런 말없이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루나는 활과 화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레피나는 이전에 쓰던 칼이 못쓰게 되어 루나에게 받은 칼을 무서울 정도의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의 그녀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루나는 조금 무섭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라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도 지키지 못하는 자인가.”
“분명히 다른 무리들을 끌어 모아 오려는 것이겠지요.”
“어차피 끌어온다고 해봤자 오합지졸 밖에 더 되겠어요?”
“오합지졸 치고는 숫자가 좀 많은 것 같은데.”
진의 말에 루나와 레피나는 눈앞을 바라봤다. 보무도 당당하게 등장하는 라울과 그의 뒤에 서 있는 제법 많은 숫자의 남자들. 척 보기에도 도적떼 같아 보이는 그들은 하나같이 세 사람을 보며 연신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정확히는 루나와 레피나를 보고 입맛을 다시고 있던 것이었겠지만. 그 시선에 불쾌감을 느낀 루나가 조용히 화살을 쏘려 하자 진이 팔을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지켜보자는 뜻. 하지만 저 시선을 참고 견디기란 그녀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불쾌한 일이었다.
“라울. 이제 정말 타락할 대로 타락해 버렸군요.”
“흥. 그까짓 거 알 게 뭐야. 그보다 그 때 네 년도 확실히 저승으로 보냈어야 하는 건데.”
“닥치세요. 기사로서의 의무를 져버리고, 타락해버린 당신에게 남은 것은 지옥에 떨어지는 길 뿐입니다. 목은 씻고 왔겠죠?”
“네 년이 상대할 사람은 내가 아니야. 내 뒤에 있는 충실한 나의 부하들이지. 너희는 그저 내 앞에서 죽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한참 라울의 말을 듣고 있던 진은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많다고는 해도 스무 명도 안 되는 숫자. 더군다나 어디서 끌어왔는지 모를 작자들. 어차피 자신의 상대는 아니었지만 레피나를 위해서라도 저런 잔챙이들은 빨리 정리해 버리는 것이 좋았다. 눈앞에 아니꼽게 서있는 자의 겁에 질린 표정을 보기 위해서라도.
“속공으로 간다. 루나.”
“저런 도적 나부랭이들이야 몇 수레가 온다고 한 들 문제없어요!”
루나의 말이 끝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앞으로 튀어나가는 진. 무기를 매만지던 도적들은 갑자기 자신들의 눈앞에 다가온 거대한 덩치의 수인족에게 일순간 압도당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진의 공격. 등에 맨 태도는 장식품인 양 오로지 손톱과 이빨만으로 순식간에 눈앞의 인간들을 죽여 나간다. 그 모습에 겁에 질린 자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을 쳐 버렸고, 루나가 화살을 날릴 필요도 없이 순식간에 도적들은 꽁지가 빠져라 도망을 쳐 버렸다.
“어라? 내가 나서기도 전에 끝내버리면 조금 곤란한데.”
“이건 식후 운동감도 되지 않는군.”
가볍게 손을 털어내면서 시시하다는 듯이 말하는 진과 어딘지 맥 빠진 표정의 루나. 그런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라울. 그런 라울의 정신을 돌아오게 한 것은 레피나의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언제까지 멍하니 있을 겁니까? 제 검은 그대의 목을 노리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별 볼일 없는 가문의 계집애가!”
레피나의 도발이 의외로 먹힌 것인지 라울은 검을 빼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 하는 진. 라울은 허리에 검을 두 자루 지니고 있다. 하나는 겉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 다른 하나는 라울이 방금 뽑은 평범한 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력이 좋지 않다면 당연히 무기라도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 레피나의 검은 루나에게 빌린 것으로 어디까지나 평범한 검이다. 그런데 라울은 상대방과 같은, 지극히 평범한 검을 들었다.
‘비장의 한 수라는 건가. 하지만 지금 꺼내지 않으면 쓸 수 없을 텐데. 그 조커.’
어차피 이 대결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라울이 검을 잡은 모습은 초보자의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반면에 레피나는 상대에게 조용히 검을 겨누고 살짝 자세를 낮춰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다. 초보자라면 저 일격은 아마 받아내기 힘들 것이다. 설령 받아 낸다고 해도 그 다음에 올 공격을 막지 못한 채 땅바닥에 널브러지겠지만.
“그 목숨. 확실히 받아가겠습니다.”
“흥! 날 죽이면 너의 가문 역시 무사하지 못해!”
“유감이군요. 저는 이미 집안에서 의절당한 몸이니까.”
그리고 땅을 박차고 달려가는 레피나. 라울은 그 모습에 겁을 먹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공포에 가득한 눈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레피나를 바라보는 라울의 모습. 입고 있던 바지는 이미 축축해져 버렸고 전신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 모습은 흡사 뱀을 눈앞에 두고 굳어버린 쥐를 연상케 했다.
“사, 살려…!”
마지막 한 마디를 할 겨를도 없이 레피나의 검은 라울의 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섬광과도 같은 일격. 목을 꿰뚫린 라울은 땅에 쏟아지는 자신의 피를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당신이 가져간 이것. 확실히 돌려받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라울의 허리에 있던 고급스러워 보이는 칼을 집어든 레피나. 얼핏 봤을 때는 그냥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 같았지만 가까이서 그것을 본 진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칼집부터가 정교하게 세공된 백금으로 되어 있고, 다른 부분에도 여지없이 복잡하게 조각된 문양들이 가득 했다. 이 정도면 어딘가의 암매장에 내놔도 상당한 값으로 팔릴 것이고, 만약에 이 물건이 진짜로 팔렸다면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 남자도 분명히 어딘가에서 떵떵거리고 살았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던 진은 다시 속으로 한 가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이 정도의 물건을 얻은 다음 금방 암시장에 팔지 않은 거지? 거기다 이 대결에서 그가 이걸 사용하려는 낌새는 없었어. 최후의 조커 정도로 생각했지만, 뭔가 이유가 있나보군. 저 검.’
사실 수룡왕의 기사단 중 믿을 수 있는 자들을 선발해서 운반하고 있었던 검이라고 한다면 그것부터가 범상치 않은 물건일 것이고, 라울은 그걸 알고 배신이라는 방법으로 검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검을 쓸 수는 없었고 결국 이런 곳에서 레피나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휴~. 이제 겨우 끝났군요.”
“생각해보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었지만.”
“저에게는 하루가 일 년과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아직도 분이 안 풀리는지 라울의 시체를 내려다보는 그녀. 진은 그런 두 사람을 데리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하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땠다.
어김없이 노숙을 하게 된 세 사람. 루나는 이제 레피나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같이 임무를 수행하던 동료들은 배신자의 기습에 모두 사망해 버리고 살아남은 것은 자신 뿐. 더군다나 지금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줄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나서봤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을 뼈저리게 알 고 있는 그녀이기에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간 일에 너무 신경을 써 봤자 피곤할 뿐이야. 일단 오늘은 푹 쉬고 내일 고민해 보는 게 어때?”
진의 충고에 레피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고민해 봐야 아무런 해결책도 나오지 않으니까. 일단은 배신자에게 복수를 한 것으로 오늘의 일은 마무리 짓기로 하고 그녀는 이른 잠자리를 청했다.
이야기 상대가 없어지자 심심해진 루나 역시 누워서 금방 곯아 떨어져 버렸고 진은 그저 타고 있는 모닥불에 나뭇가지 몇 개를 집어넣은 다음 조용히 밤의 방문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잠들고 나면 반드시 나타나는 프레시아. 그녀는 그의 예상대로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꽤 고생한 것 같은데요?”
“고생은 무슨.”
“이걸로 운명의 수레바퀴가 움직일 준비는 거의 끝났군요.”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러나 더 이상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원하는 해답은 스스로가 찾아야만 한다고 말하는 프레시아. 그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던 진은 다시금 불꽃을 바라봤다. 운명의 수레바퀴라니, 그리고 움직일 준비가 거의 다 끝났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자신과 루나, 그리고 레피나가 만나게 된 것은 모두 우연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 만약 그것이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미리 예정되어 있었다면?
“어쩌면 엄청난 일에 휘말려 버린 걸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중얼거리는 진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는 프레시아. 그녀는 조용히 팔짱을 끼고 하늘을 바라봤다. 두 개의 달이 밝은 빛을 발하며, 그 주변을 별빛이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고요한 밤하늘.
“이제 곧 저 밤하늘 위로 비명소리가 메아리 칠거야. 아주 섬뜩하고, 아름다운 비명소리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입가에는 요사스러운 웃음이 머금어져 있었다.
잠수기간이 길어서
죄송합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쇼.(맹호락지세X2)

아무런 생각 없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잔뜩 취해있던 라울은 자신의 뺨을 스치고 날아온 화살에 일순간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화살이 날아온 것은 자신의 뒤 쪽. 그러나 등을 돌려 주변을 살펴봐도 화살을 날린 사람으로 생각되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귀신의 장난질이라고 생각되는 이 상황. 한참 주변을 둘러보던 라울은 날아온 화살에 무언가 편지 같은 게 묶여져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허겁지겁 그걸 펼쳐 봤다.
전략.
기사단으로서의 의와 맹세를 더럽힌 자에게 고합니다.
명가의 후광을 빌어 기사단의 이름에 먹칠을 한 것도
모자라 악행을 일삼고 다니는 그대의 모습에 저, 레피나
기슈타인은 기사단의 죽어간 동료들의 원한을 풀기 위해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시간은 내일 정오.
장소는 이 도시의 북문 앞.
제멋대로 날뛰는 악에게 하늘의 심판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 목을 씻고 기다리고 계십쇼.
그걸 끝까지 다 읽은 순간 라울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모조리 죽여 버렸어야 하는 건데. 조만간 기사단에서 의문을 품고 이곳까지 본대를 파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자신이 돈으로 고용한 도적들 따위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버릴 것이다. 수룡왕의 기사들이라는 작자들은 고지식하니까, 자신이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면 가문과는 상관없이 자신을 죽이려 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살아남을 확률은 극히 희박해 진다. 일전에 사건을 벌여 빼앗은 물건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자신이 아는 갖은 방법을 동원해도 그걸 쓸 방법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바에는 그 계집을 죽이고 나는 죽은 것처럼 꾸미면 그만이야. 그걸 쓸 방법은 나중에 천천히 궁리해도 상관없겠지. 그걸 쓸 수 있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날 깔볼 수 있을 자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편지를 구겨서 한 손에 쥔 라울은 주점을 나섰다. 보름달이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는 것이 꽤 깊은 밤인 듯 했지만 지금 그에게 시간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잘난 척 하는 그 여자를 박살내는 것이었으니까.
“그럼, 기대하고 있으라고. 멍청한 년.”
다음날 정오. 도시의 북문 근처에서 라울을 기다리고 있는 세 사람. 진은 아무런 말없이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루나는 활과 화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레피나는 이전에 쓰던 칼이 못쓰게 되어 루나에게 받은 칼을 무서울 정도의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의 그녀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루나는 조금 무섭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라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도 지키지 못하는 자인가.”
“분명히 다른 무리들을 끌어 모아 오려는 것이겠지요.”
“어차피 끌어온다고 해봤자 오합지졸 밖에 더 되겠어요?”
“오합지졸 치고는 숫자가 좀 많은 것 같은데.”
진의 말에 루나와 레피나는 눈앞을 바라봤다. 보무도 당당하게 등장하는 라울과 그의 뒤에 서 있는 제법 많은 숫자의 남자들. 척 보기에도 도적떼 같아 보이는 그들은 하나같이 세 사람을 보며 연신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정확히는 루나와 레피나를 보고 입맛을 다시고 있던 것이었겠지만. 그 시선에 불쾌감을 느낀 루나가 조용히 화살을 쏘려 하자 진이 팔을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지켜보자는 뜻. 하지만 저 시선을 참고 견디기란 그녀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불쾌한 일이었다.
“라울. 이제 정말 타락할 대로 타락해 버렸군요.”
“흥. 그까짓 거 알 게 뭐야. 그보다 그 때 네 년도 확실히 저승으로 보냈어야 하는 건데.”
“닥치세요. 기사로서의 의무를 져버리고, 타락해버린 당신에게 남은 것은 지옥에 떨어지는 길 뿐입니다. 목은 씻고 왔겠죠?”
“네 년이 상대할 사람은 내가 아니야. 내 뒤에 있는 충실한 나의 부하들이지. 너희는 그저 내 앞에서 죽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한참 라울의 말을 듣고 있던 진은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많다고는 해도 스무 명도 안 되는 숫자. 더군다나 어디서 끌어왔는지 모를 작자들. 어차피 자신의 상대는 아니었지만 레피나를 위해서라도 저런 잔챙이들은 빨리 정리해 버리는 것이 좋았다. 눈앞에 아니꼽게 서있는 자의 겁에 질린 표정을 보기 위해서라도.
“속공으로 간다. 루나.”
“저런 도적 나부랭이들이야 몇 수레가 온다고 한 들 문제없어요!”
루나의 말이 끝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앞으로 튀어나가는 진. 무기를 매만지던 도적들은 갑자기 자신들의 눈앞에 다가온 거대한 덩치의 수인족에게 일순간 압도당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진의 공격. 등에 맨 태도는 장식품인 양 오로지 손톱과 이빨만으로 순식간에 눈앞의 인간들을 죽여 나간다. 그 모습에 겁에 질린 자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을 쳐 버렸고, 루나가 화살을 날릴 필요도 없이 순식간에 도적들은 꽁지가 빠져라 도망을 쳐 버렸다.
“어라? 내가 나서기도 전에 끝내버리면 조금 곤란한데.”
“이건 식후 운동감도 되지 않는군.”
가볍게 손을 털어내면서 시시하다는 듯이 말하는 진과 어딘지 맥 빠진 표정의 루나. 그런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라울. 그런 라울의 정신을 돌아오게 한 것은 레피나의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언제까지 멍하니 있을 겁니까? 제 검은 그대의 목을 노리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별 볼일 없는 가문의 계집애가!”
레피나의 도발이 의외로 먹힌 것인지 라울은 검을 빼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 하는 진. 라울은 허리에 검을 두 자루 지니고 있다. 하나는 겉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 다른 하나는 라울이 방금 뽑은 평범한 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력이 좋지 않다면 당연히 무기라도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 레피나의 검은 루나에게 빌린 것으로 어디까지나 평범한 검이다. 그런데 라울은 상대방과 같은, 지극히 평범한 검을 들었다.
‘비장의 한 수라는 건가. 하지만 지금 꺼내지 않으면 쓸 수 없을 텐데. 그 조커.’
어차피 이 대결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라울이 검을 잡은 모습은 초보자의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반면에 레피나는 상대에게 조용히 검을 겨누고 살짝 자세를 낮춰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다. 초보자라면 저 일격은 아마 받아내기 힘들 것이다. 설령 받아 낸다고 해도 그 다음에 올 공격을 막지 못한 채 땅바닥에 널브러지겠지만.
“그 목숨. 확실히 받아가겠습니다.”
“흥! 날 죽이면 너의 가문 역시 무사하지 못해!”
“유감이군요. 저는 이미 집안에서 의절당한 몸이니까.”
그리고 땅을 박차고 달려가는 레피나. 라울은 그 모습에 겁을 먹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공포에 가득한 눈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레피나를 바라보는 라울의 모습. 입고 있던 바지는 이미 축축해져 버렸고 전신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 모습은 흡사 뱀을 눈앞에 두고 굳어버린 쥐를 연상케 했다.
“사, 살려…!”
마지막 한 마디를 할 겨를도 없이 레피나의 검은 라울의 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섬광과도 같은 일격. 목을 꿰뚫린 라울은 땅에 쏟아지는 자신의 피를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당신이 가져간 이것. 확실히 돌려받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라울의 허리에 있던 고급스러워 보이는 칼을 집어든 레피나. 얼핏 봤을 때는 그냥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 같았지만 가까이서 그것을 본 진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칼집부터가 정교하게 세공된 백금으로 되어 있고, 다른 부분에도 여지없이 복잡하게 조각된 문양들이 가득 했다. 이 정도면 어딘가의 암매장에 내놔도 상당한 값으로 팔릴 것이고, 만약에 이 물건이 진짜로 팔렸다면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 남자도 분명히 어딘가에서 떵떵거리고 살았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던 진은 다시 속으로 한 가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이 정도의 물건을 얻은 다음 금방 암시장에 팔지 않은 거지? 거기다 이 대결에서 그가 이걸 사용하려는 낌새는 없었어. 최후의 조커 정도로 생각했지만, 뭔가 이유가 있나보군. 저 검.’
사실 수룡왕의 기사단 중 믿을 수 있는 자들을 선발해서 운반하고 있었던 검이라고 한다면 그것부터가 범상치 않은 물건일 것이고, 라울은 그걸 알고 배신이라는 방법으로 검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검을 쓸 수는 없었고 결국 이런 곳에서 레피나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휴~. 이제 겨우 끝났군요.”
“생각해보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었지만.”
“저에게는 하루가 일 년과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아직도 분이 안 풀리는지 라울의 시체를 내려다보는 그녀. 진은 그런 두 사람을 데리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하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땠다.
어김없이 노숙을 하게 된 세 사람. 루나는 이제 레피나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같이 임무를 수행하던 동료들은 배신자의 기습에 모두 사망해 버리고 살아남은 것은 자신 뿐. 더군다나 지금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줄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나서봤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을 뼈저리게 알 고 있는 그녀이기에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간 일에 너무 신경을 써 봤자 피곤할 뿐이야. 일단 오늘은 푹 쉬고 내일 고민해 보는 게 어때?”
진의 충고에 레피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고민해 봐야 아무런 해결책도 나오지 않으니까. 일단은 배신자에게 복수를 한 것으로 오늘의 일은 마무리 짓기로 하고 그녀는 이른 잠자리를 청했다.
이야기 상대가 없어지자 심심해진 루나 역시 누워서 금방 곯아 떨어져 버렸고 진은 그저 타고 있는 모닥불에 나뭇가지 몇 개를 집어넣은 다음 조용히 밤의 방문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잠들고 나면 반드시 나타나는 프레시아. 그녀는 그의 예상대로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꽤 고생한 것 같은데요?”
“고생은 무슨.”
“이걸로 운명의 수레바퀴가 움직일 준비는 거의 끝났군요.”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러나 더 이상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원하는 해답은 스스로가 찾아야만 한다고 말하는 프레시아. 그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던 진은 다시금 불꽃을 바라봤다. 운명의 수레바퀴라니, 그리고 움직일 준비가 거의 다 끝났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자신과 루나, 그리고 레피나가 만나게 된 것은 모두 우연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 만약 그것이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미리 예정되어 있었다면?
“어쩌면 엄청난 일에 휘말려 버린 걸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중얼거리는 진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는 프레시아. 그녀는 조용히 팔짱을 끼고 하늘을 바라봤다. 두 개의 달이 밝은 빛을 발하며, 그 주변을 별빛이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고요한 밤하늘.
“이제 곧 저 밤하늘 위로 비명소리가 메아리 칠거야. 아주 섬뜩하고, 아름다운 비명소리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입가에는 요사스러운 웃음이 머금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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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7/07/18 01:59 | └Wheel of fortun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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