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el of fortune-Part1-6-

언제나 그렇듯이 재미없는 소설~.

간만에 네코미미 모에!

진은 뭐 씹은 표정으로 조용히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라고 생각했건만 상대는 능글능글하게 그것을 받아치고, 거기다 확실한 반격까지 날려버렸다. 설전에서의 완전한 참패. 지금까지 없었던 굴욕. 그렇다고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는 것이 저쪽에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으니 구실 삼을 것이 없는 것이다. 지독할 정도로 치밀한 상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사람은 단 하나 뿐이었다.
‘그 할망구와 거의 동급의 능구렁이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나뭇가지를 몇 개 부러뜨려 모닥불에 집어넣은 다음 진은 자리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밤 새 무언가에 시달리기라도 한 것인지 진은 아침햇살에 오만 인상을 찌푸리며 기지개를 폈다. 평소대로라면 개운하게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어제 저녁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결국 잠을 설친 것이다. 아직 혼미한 정신을 되돌리기 위해 관자놀이를 몇 번 문지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하는 아침 태양을 바라본다. 그 두 눈에는 오늘은 제발 아무 일도 없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담겨 있었다.
루나를 깨운 다음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짐을 정리해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한 두 사람. 항구도시 토레이나는 걸어서 적어도 2주 정도는 걸리는 곳에 있다. 조금이라도 강행군을 해두지 않으면 괜히 일찍 도착하지 못하고 시간만 끌게 되고 루나를 쫓아오는 자들이 따라붙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것을 막기 위해 진은 일부러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 천천히 가요.”
“그럴 시간이 없어.”
루나는 힘든지 천천히 가자고 말했지만 진은 그 의견을 아주 간단히 묵살해 버렸다. 그녀가 칭얼거리는 것을 다 받아 준다면 앞으로 곤란한 상황이 와도 쉽게 잘라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자를 때는 확실하게 잘라야 한다. 그녀는 몸은 다 컸지만 아직 어린 면이 있어서 쉽게 칭얼대거나 하니까,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버릇을 들이려는 것이다. 물론 그걸 알 리 없는 루나는 볼멘 표정으로 진의 뒤를 따라갈 뿐이었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길가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두 사람. 루나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진을 바라봤지만 진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느긋하게 휴식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뒤를 졸졸 쫓아오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에게 경고의 시선을 슬쩍 날렸지만 그쪽은 애매한 웃음으로 대항하고 있었다.
‘강적이군.’
진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저걸 떨쳐낼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방법이 있다면 먼저 해치우는 것인데 쓸데없는 싸움으로 기력을 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기회는 오겠지.’
아예 신경을 끄기로 마음을 먹고, 진은 엉덩이를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쫓아온다면 오히려 신경 끄는 편이 마음이 편해진다. 더군다나 저 흑의인은 살금살금 달라붙는 잔챙이들을 알아서 처리하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잘 써먹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을 한 다음 한 결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힘차게 걸음을 옮기는 진. 그런 그의 모습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흑의인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진과 루나가 아바론을 떠났다는 것이 흑의인들의 정보망에 의해 입수되고, 추적의 명령을 내린 지 이틀. 그러나 두 사람을 추적하기 위해 보낸 자들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어두운 방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추적자들이 보낸 소식을 기다리는 한 남자. 광택이 없는 탁한 검은 색의 갑옷에 주름이 깊게 파인 얼굴. 희끗희끗 늘어가는 흰 머리카락은 그의 육체가 이미 정점을 지나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지금 눈앞에 있는 검은 옷의 부하에게 쏟아내려는 분노를 간신히 이성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어째서 소식이 이리 없는 거냐?”
“죄송합니다.”
“그런 말 할 여유가 있다면 다른 놈들을 보내라. 지금 당장!”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활화산 같은 분노를 억지로 억누르는 그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거의 다 잡은 사냥감을 놓치고, 거기다 제 손으로 풀어준 꼴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런 그의 등 뒤로 검은 로브로 몸을 감싼, 흑발의 미청년이 조용히 나타났다. 그는 분노가 가득해 보이는 노기사를 조롱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천천히 말을 꺼냈다.
“역시 실패로군. 롤랜드 공.”
“내 책임으로 돌리고 싶은 건가? 더스트.”
“공을 책망할 생각은 없소. 단지 열심히 해줬으면 하는 것뿐이지.”
“용무가 없다면 어서 꺼져라. 지금의 난 심기가 불편하니까.”
“알았소. 하지만 이것 하나 만은 말해두지. 집행자를 움직이는 것이 좋을 거요.”
그렇게 말하고 어둠 속으로 녹아들듯이 사라지는 더스트라는 이름의 미청년. 노기사, 롤랜드는 분노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책상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빠칵!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그대로 부서져 버리는 책상. 육체는 쇠락하기 시작했어도 아직 그 힘은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라는 증거품이 되어버린 부서진 책상을 한참이나 노려보던 롤랜드는 부하들을 불러 그 책상을 치우도록 명령한 다음 의자에 앉아 천천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분노는 생각을 망치고 판단을 흐려지게 한다. 일단 지금 당장은 그 엘프 계집애와 목걸이를 손에 넣는 일이 중요하다. 아니, 최우선적으로 목걸이만이라도 확보해야 한다. 어차피 그 엘프가 아니더라도 써먹을 수 있는 존재는 많으니까.
“그럼 어디, 시작해 보실까.”
어두운 방 속에서 롤랜드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하루 종일 걸어서 겨우 작은 마을에 도착한 진과 루나. 두 사람은 일단 묵을 곳이라도 찾아보려고 했지만 여관 같은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고 그나마 주점에서 겨우 안 쓰는 창고에서 자는 것을 허락해 줬다. 대가는 꽤 비싸기는 했지만 진은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어둡고 퀴퀴한 창고 한 구석에 대충 짐을 내려놨다.
“어째서 이런 곳에서, 그것도 비싼 돈을 주면서 자야하죠?”
“어쩔 수 없잖아. 이런 곳에서 설마 고급 여관이라도 기대한 것은 아니겠지?”
“그건 아니지만 이건 좀 심하잖아요!”
“그렇게 칭얼댈 기운이 있으면 신경 끄고 잠이나 자.”
불만에 투덜거리는 루나를 무시하고, 대충 마른 곳을 골라 모포를 깔고 그대로 누워버리는 진. 그에게는 익숙한 일인지는 몰라도 루나에게는 고역이었다. 물론, 루나의 고충을 모르는 진이 아니었지만 괜히 여기서 어리광을 받아 줘 봤자 나중에 골치 아파진다. 그렇기에 애써서 무시하고 자는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루나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등을 돌려 태평하게 자는 남자에게 짜증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르려 하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예전에 함께 있었던 동료들은 이 정도로 자신의 의견을 묵살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그녀의 의견을 무시하고, 더군다나 일말의 가치도 없다는 듯이 딱 잘라버린 것이니 분노가 한계치에 다다른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하고 같이 가지 않으면 안 돼.’
간신히 이성이 분노를 제압하고,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나서야 그녀는 조금 안정이 되었는지 눅눅한 건초 위에 주섬주섬 모포를 깔기 시작했다. 표정은 여전히 어딘가 화가 나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같은 시간, 둘의 뒤를 따라오던 흑의인은 두 사람이 있는 창고의 지붕에 느긋하게 기대서 조용히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대로 저들이 아무 탈 없이 여행을 해준다면 좋겠지만 세상일은 그리 녹록하지 않아, 조금씩이지만 다가오는 추적자들의 기미를 그는 곧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집행자 레벨의 추적자가 무려 셋. 아직 가깝지는 않지만 내일 정도면 아마 따라잡히고 말 것이다. 진은 어떻게든 자력으로 해결 할 수 있겠지만 저 루나라는 아가씨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 지금까지 임기응변으로 해쳐 온 것이 신기할 정도니까.
“뭐, 어차피 배신자가 된 마당에 거리낄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내가 원하는 목적을 위해 움직여 줘야 하는 자들이니까. 하지만 굳이 내가 나설 필요도 없겠지.”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서는 일어나서 조용히 무언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는 흑의인. 곧 허공에 복잡한 도형과 기형적인 글자들로 이루어진 원형의 마법진이 나타났고 그 마법진 속에서 이형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워서 실루엣 밖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보통 인간의 세 배는 될 것 같은 덩치와 거대한 뿔. 그리고 그 몸에 비례하는 거대한 날개. 주신의 신전에 장식품으로 조각되어 있는 ‘데몬’이라는 존재와도 비슷해 보이는 그것은 곧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 저 편으로 날아갔다. 자신을 소환한 주인의 명령 같은 것은 듣지도 않고.
“여전히 싸우는 일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날아가는군. 그래서 난 네놈이 마음에 들지만.”
흑의인의 입가에 떠오른 비릿한 미소. 그 미소는 어둠속에서 달려오는 존재들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무척이나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햇빛이 비치지 않는 창고 안에서 진이 눈을 뜬 것은 자신의 품속에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막 느낄 때였다. 부스스한 눈으로 눈을 뜬 진은 눈을 아래로 돌려 자신의 품속에 있는 게 뭔지 천천히 확인했다. 금발에 뾰족한 귀. 굴곡이 진 체형. 분명히 루나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눈을 감으려다 무언가를 깨닫고 그는 아주 조금씩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눈을 몇 번이고 비빈다음 천천히 자신의 곁에 있는 존재를 내려다 봤다. 틀림없다. 루나다. 어째서 그녀가 자신의 곁에서 잠들어 있는지, 그리고 자신은 왜 그것을 알지 못했는지 고민에 휩싸였다.
‘젠장. 잠결에 사고라도 친 게 아닐까?’
일단 옷은 정상적으로 입고 있었고, 무언가 일(?)을 벌인 흔적도 없다. 그것은 일단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신은 지금 마누라에 애 딸린 유부남이다. 여기서 이상한 짓거리라도 하는 날에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자시고 어딘가로 도망쳐야 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아무리 강한 수인족이라고 해도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의 아내에게는 한 없이 약한 존재였다.
“위험했어. 확실히.”
위기를 잘 넘긴 것에 안도를 하면서 부스럭 부스럭 짐을 챙기기 시작하는 진이었다.
루나는 한참 뒤에야 겨우 일어나서 졸린 눈을 비볐다. 분명 불편한 곳에서 잤을 텐데, 어쩐지 무척 잘 잔 것 같았다. 악몽도 꾸지 않고, 누군가의 따스한 온기에 마음이 편안해져, 그만 완전히 푹 자버리고 말았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좋은 일이겠지만.
“후아암~. 일찍 일어났네요?”
“그래. 조금 잠을 설쳐서 그런지 하품이 저절로 나온다만.”
“오늘도 계속 걸을 건가요?”
“그렇겠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실망한 표정이 역력한 루나. 사실 진도 하루 종일 걷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들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기 위해서는 한 시라도 빨리 움직이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다. 더군다나 쫓아오는 떨거지들은 지붕 위의 스토커가 알아서 해결해 주고 있으니까, 어찌 보면 두근거리는 긴장감조차 없는, 그런 여정이 되어버렸지만.
“아침은 주점에서 대충 챙겨먹고 움직이자.”
“안돼요!”
“뭐가?”
“아침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하루 종일 처져 있게 된다구요!”
어딘지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말. 진은 피식 웃더니 알았다고 말하면서 창고 문을 열었다. 환하게 비춰오는 아침 햇살. 그 아침 햇살에 두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의 생각을 담고 주점으로 향했다.
“흐음~. 확실히 어제저녁에는 위험했어요.”
두 사람을 지켜보는 흑의인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자신이 소환한 존재가 가져온 전리품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미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시체들. 삐져나온 내장은 지붕을 타고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고 개 중에는 미라처럼 되어버린 것들도 존재했다. 그는 그것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날려 주점을 나온 두 사람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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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se | 2007/06/06 01:28 | └Wheel of fortun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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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烏有 at 2007/06/08 02:42
여전히 길고 재밌군요'ㅈ'/건필하십셔
Commented by zerose at 2007/06/09 00:43
잇힝~. 재밌게 봐주셔서 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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