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5월 31일
Wheel of fortune-Part1-5-
아놔...나 이거 포스팅 확인도 안해보고...나 왜이러지?

이것이 인류의꿈! 인류의 소망! 인류의 업!
“이야~. 대단하시군요. 설마 제 기척을 눈치 챌 줄이야.”
“보이는 곳에서 빤히 지켜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알게 된다.”
“아하하~. 분명히 잘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묘하게 늘어지는 말투에 방금 자신이 쓰러뜨린 자와 마찬가지로 검은색 일색의 옷만을 입고 있는 자. 목소리나 체형으로 봐서는 남자인 것 같았지만 코끝에 미묘하게 풍겨오는 여성용의 향수냄새가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어차피 지금 눈앞의 존재가 남자인지, 아니면 여자인지는 진에게 그다지 관계가 없었다. 말이 안 통한다면 바닥에 쓰러진 자처럼 죽이면 그만이다. 물론, 눈앞의 상대방이 정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있었다면 자신이 어떻게 할지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진이 말을 꺼내려 할 때 선수를 치듯 흑의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과 싸울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어차피 제 목적은 이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집단의 목적과는 틀리니까요.”
“녀석들의 동료가 아닌가?”
“동료인 척 하는 것일 뿐이죠.”
그 말을 듣고 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일단 눈앞의 이 녀석은 적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군이라고도 할 수 없는 존재다. 과연 어디까지 신용하는 것이 좋을까? 100퍼센트 믿을 수 있다고 하면 편하겠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는 것이 그리 녹록하지 않은 것을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진은 여전히 경계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오늘은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소득이 있었다고 해 두지요.”
“정확한 목적이 뭐냐?”
“그건 비․밀이랍니다.”
그런 말을 던지고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려 사라지는 흑의인. 진은 그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흘깃 한 번 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여관으로 돌아갔다.
루나는 여관방에서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째서 자신이 지금 진과 만나게 된 것인지, 그리고 왜 하필 진 예거라는 남자인지를. 그야말로 우연에 가까운 재회. 그와 처음 만난 것도 우연에 의한 것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쟁 중이었다. 전쟁 중에 자신 같은 고아들이 한둘도 아니었을 것이고 당연히 병사들이 고아 같은 존재를 만나게 될 확률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더군다나 자신은 수인족과 인간의 싸움터에서 변을 당했었으니까, 진을 만나게 된 것도 상당히 높은 확률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우연이라고 밖에 뭐라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 사람이 나와 만날 확률은 없다…라고 말하는 게 정상일 텐데.’
이건 마치 운명의 여신이 일부러 꾸며놓은 덫에 걸려 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자들의 만남. 오히려 그녀 곁에 원래 있었어야 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처럼 다 죽어버리고 혼자 남게 된 그녀의 곁에 진이 우연히 나타나게 된 것이다.
‘모든 게 다 이것 때문이야.’
그녀는 원망에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바라봤다. 섬세한 금빛의 목걸이 줄에 금으로 주변을 둘러 싼 검은 보석이 하나 박혀 있을 뿐인 평범한 목걸이. 그러나 이것 때문에 그녀는 몇 번이나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더불어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왜 자신에게 왔는지, 그리고 그 목걸이 때문에 잃은 것이 너무 많은 그녀였지만 이걸 버릴 수는 없었다. 아니,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편이 정확한 쪽이었다.
‘나에게 대체 바라는 게 뭐야?’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물어 봤자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스러워서, 루나는 그냥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오늘만큼은 제발 악몽을 꾸지 않기를 바라며.
방에 돌아온 진은 손에 묻은 피를 대충 닦아내고 침대에 걸터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미 처음부터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지켜보고 있었던 존재가 루나를 쫓는 자들의 목적과는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이며 왜 일부러 손을 쓰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가. 자신과 루나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면서.
‘앞으로 자주 마주치게 될 지도 모르겠군. 그 녀석.’
진의 미간에 깊어지는 주름과 함께 밤도 더욱 더 깊어져 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루나는 오래간만에 마음 편히 잔 덕분에 밝은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동안 시달리던 악몽도 어제는 꾸지 않은데다가 별다른 방해 없이 푹 잔 덕분일 것이다.
밝은 표정으로 일어난 그녀는 혹시라도 진이 늦잠을 자고 있을까 걱정을 했지만 혹시나 정말 늦잠을 잘까 생각하고는 천천히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 생각이 그녀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에는 1시간도 걸리지 않았지만.
“정말! 왜 자꾸 늦잠이에요!”
“잠은 충분히 자야지, 안 그러면 쓰러져.”
“충분히라는 것도 정도가 있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넋 놓고 쓰러져 있다는 게 말이나 될법한 소리에요?”
루나의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잔소리. 진은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돌리면서 어떻게든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했고, 거기에 발끈한 루나는 더욱 더 잔소리를 퍼부었지만 진에게는 하등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거 크더니 잔소리꾼이 다 됐군.’
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린 채, 짐을 챙기러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결국 아바론을 나선 것은 정오가 다 되어 갈 무렵이었다. 루나는 진이 늑장을 부려서 그런 것이라고 열심히 잔소리를 했지만 진은 그냥 멋쩍은 웃음만 지으면서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그런데 목적지는 어디에요?”
“일단은 토레이나.”
“그곳은 항구도시 아닌가요?”
“그래. 그 친구에게 가려면 걷는 것 보다야 배를 타는 편이 빨라서 말이지.”
“친구라는 사람이 어디에 사는데요?”
“들으면 놀라서 자빠질걸.”
그렇게 말하고 대답을 안 해주는 진. 루나는 궁금한 마음에 더 물어봤지만 진은 단지 말해주면 안 가려고 할 것이 분명할거라고 말하면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런 그의 태도에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는 그녀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본인이 말해주기 싫다는데. 더군다나 강제로 입을 열게 할 방법이 지금의 루나에게는 없었다.
한참을 걸어가던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길 가에 주저앉았다. 엘프나 수인족이 인간보다 다리가 튼튼하다고 해도 일정시간 이상 걷게 되면 자연히 지치게 마련이다. 둘은 그냥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아 조용히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자, 적당히 쉬었으면 다시 가 볼까.”
한참 뒤에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진이었다. 루나는 아무런 말없이 엉덩이를 툭툭 털면서 일어났고 진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준 다음 가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신의 등 뒤를 밟는 자에게 슬쩍 눈길을 한번 주고는.
“이런~. 생각보다 철저히 경계하고 있군요.”
두 사림의 뒤를 쫓는 자는 다름 아니 어제 밤 진과 마주친 그 흑의인. 그는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아주 조용히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일단 녀석들에게는 협력해야 하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그건 어찌되는 상관없어. 과연 운명의 여신이 엮어놓은 사슬을 당신들이 풀 수 있을지 두고 봐야겠군요.’
그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두 사람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밤이 되었지만 마을에 도착하지 못한 진과 루나는 어쩔 수 없이 노숙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봤자 텐트나 그런 것을 친다는 게 아니라 바닥에 적당히 낙엽이나 푹신푹신한 것을 깔고, 그 위에 모포를 깔고 되는대로 잠을 청할 뿐이었지만.
모닥불을 피우고 마주 앉은 두 사람. 낮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라, 어색한 침묵만을 지키고 있을 뿐,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정말 우연이야. 너랑 다시 만난 건.”
먼저 망을 꺼낸 것은 진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내뱉은 말이기는 했지만 그 말 속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루나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저희가 다시 만날 확률은 없는 거나 다름없었을 텐데요.”
“뭐, 운명의 여신이 우연이라는 것을 이용해 장난이라도 쳤나보지.”
“아저씨는 운명을 믿어요?”
“그다지. 그냥 일이 안 풀리면 투덜거리면서 씹는 단어 밖에 안 돼.”
“아저씨도 그럴 때가 있군요.”
“내가 뭐 엄청난 운의 소유자도 아니고 말이지. 그냥 평범한 수인족일 뿐이야.”
“저는 지금까지 제 운명이 이런 거구나 하고 한탄하기만 했어요.”
“운명을 한탄할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돌파구를 생각해. 그게 더 이득이 크니까.”
“그런가요?”
“그런 거야.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바로는 그래.”
이럴 때 만큼은 진이 의지가 된다. 먼저 세상을 살아오고, 격동의 시간을 건너온 인생의 선배로서, 그리고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동료로서.
“오늘은 걷기도 많이 걸었으니까 일찍 자 두는 것이 좋을 거야.”
“설마 또 늦게 일어나는 건 아니겠죠?”
“그 이야기는 그만해.”
“우후훗~. 알았어요. 잘 자요~.”
“그래. 좋은 꿈 꿔라.”
모포를 덮고 누워 밤하늘을 조용히 바라보는 진.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빛에 자신도 모르게 감상적이 되다가 이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예의 따라온 자가 가까이 왔기 때문에. 그는 살짝 몸을 일으켜 상대방이 있는 곳을 살짝 바라봤다. 코끝에 미미하게 걸리는 향수냄새로 판단하건데 어제의 그 녀석이 분명하다고 판단했지만 가벼이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일단은 루나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처리하면 되는 일.
‘어제의 일로 보면 괜한 싸움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렇지만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혹시라도 돌변해서 달려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는 조용히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었다.
루나가 완전히 깊은 잠에 빠진 걸 확인하고 나서야, 진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일단 그녀가 자는데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할 생각이기는 하지만 깨어난다고 해도 불가항력이다. 엘프의 귀는 인간이나 수인족에 비해 월등히 밝으니까,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다만 깊은 잠에 빠지면 작은 소리에는 반응하지 않으니 그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역시나 눈치 채고 계셨군요.”
“그렇게 대놓고 따라오면 누구라도 알아차려.”
“이렇게 해서 들킨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긴 말은 필요 없다. 네놈의 확실한 목적은 뭐냐? 적이냐, 아니면 아군이냐?”
“이런, 이런. 그렇게 적, 아군으로만 생각하면 곤란하죠. 세상에는 중립이라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럼 네놈의 목적이 뭐야? 왜 우리를 졸졸 따라오는 거지?”
“저는 단지 보고 싶을 뿐이랍니다. 운명의 사슬에 엮인 자들과 루시펠이라는 존재가 과연 어떠한 존재인지를.”
“그래서 이렇게 미행하는 건가?”
“일단 이 옷을 입고 있는 조직에 대한 겉보기식의 충성이라도 보이는 것이죠.”
무언가 비밀이 많은 것 같은 눈앞의 존재. 진은 일단 적이 아니라는 것에 약간 안심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이런 부류의 존재들은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까. 어쩌면 최악의 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적이 아닌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네놈이 내 적이라고 판단되면 그 때는 내 전력을 다해서 너를 치겠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요. 그럼 편히 쉬시길. 잔챙이들은 이미 처리했습니다.”
“고맙군. 아, 그리고 궁금한 것이 있는데.”
“뭐죠?”
“네놈, 남자냐? 아니면 여자야?”

이것이 인류의꿈! 인류의 소망! 인류의 업!
“이야~. 대단하시군요. 설마 제 기척을 눈치 챌 줄이야.”
“보이는 곳에서 빤히 지켜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알게 된다.”
“아하하~. 분명히 잘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묘하게 늘어지는 말투에 방금 자신이 쓰러뜨린 자와 마찬가지로 검은색 일색의 옷만을 입고 있는 자. 목소리나 체형으로 봐서는 남자인 것 같았지만 코끝에 미묘하게 풍겨오는 여성용의 향수냄새가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어차피 지금 눈앞의 존재가 남자인지, 아니면 여자인지는 진에게 그다지 관계가 없었다. 말이 안 통한다면 바닥에 쓰러진 자처럼 죽이면 그만이다. 물론, 눈앞의 상대방이 정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고 있었다면 자신이 어떻게 할지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진이 말을 꺼내려 할 때 선수를 치듯 흑의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과 싸울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어차피 제 목적은 이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집단의 목적과는 틀리니까요.”
“녀석들의 동료가 아닌가?”
“동료인 척 하는 것일 뿐이죠.”
그 말을 듣고 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일단 눈앞의 이 녀석은 적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군이라고도 할 수 없는 존재다. 과연 어디까지 신용하는 것이 좋을까? 100퍼센트 믿을 수 있다고 하면 편하겠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는 것이 그리 녹록하지 않은 것을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진은 여전히 경계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오늘은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소득이 있었다고 해 두지요.”
“정확한 목적이 뭐냐?”
“그건 비․밀이랍니다.”
그런 말을 던지고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려 사라지는 흑의인. 진은 그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흘깃 한 번 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여관으로 돌아갔다.
루나는 여관방에서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째서 자신이 지금 진과 만나게 된 것인지, 그리고 왜 하필 진 예거라는 남자인지를. 그야말로 우연에 가까운 재회. 그와 처음 만난 것도 우연에 의한 것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쟁 중이었다. 전쟁 중에 자신 같은 고아들이 한둘도 아니었을 것이고 당연히 병사들이 고아 같은 존재를 만나게 될 확률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더군다나 자신은 수인족과 인간의 싸움터에서 변을 당했었으니까, 진을 만나게 된 것도 상당히 높은 확률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우연이라고 밖에 뭐라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 사람이 나와 만날 확률은 없다…라고 말하는 게 정상일 텐데.’
이건 마치 운명의 여신이 일부러 꾸며놓은 덫에 걸려 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자들의 만남. 오히려 그녀 곁에 원래 있었어야 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처럼 다 죽어버리고 혼자 남게 된 그녀의 곁에 진이 우연히 나타나게 된 것이다.
‘모든 게 다 이것 때문이야.’
그녀는 원망에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바라봤다. 섬세한 금빛의 목걸이 줄에 금으로 주변을 둘러 싼 검은 보석이 하나 박혀 있을 뿐인 평범한 목걸이. 그러나 이것 때문에 그녀는 몇 번이나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더불어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왜 자신에게 왔는지, 그리고 그 목걸이 때문에 잃은 것이 너무 많은 그녀였지만 이걸 버릴 수는 없었다. 아니,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편이 정확한 쪽이었다.
‘나에게 대체 바라는 게 뭐야?’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물어 봤자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스러워서, 루나는 그냥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오늘만큼은 제발 악몽을 꾸지 않기를 바라며.
방에 돌아온 진은 손에 묻은 피를 대충 닦아내고 침대에 걸터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미 처음부터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지켜보고 있었던 존재가 루나를 쫓는 자들의 목적과는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이며 왜 일부러 손을 쓰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가. 자신과 루나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면서.
‘앞으로 자주 마주치게 될 지도 모르겠군. 그 녀석.’
진의 미간에 깊어지는 주름과 함께 밤도 더욱 더 깊어져 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루나는 오래간만에 마음 편히 잔 덕분에 밝은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동안 시달리던 악몽도 어제는 꾸지 않은데다가 별다른 방해 없이 푹 잔 덕분일 것이다.
밝은 표정으로 일어난 그녀는 혹시라도 진이 늦잠을 자고 있을까 걱정을 했지만 혹시나 정말 늦잠을 잘까 생각하고는 천천히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 생각이 그녀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에는 1시간도 걸리지 않았지만.
“정말! 왜 자꾸 늦잠이에요!”
“잠은 충분히 자야지, 안 그러면 쓰러져.”
“충분히라는 것도 정도가 있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넋 놓고 쓰러져 있다는 게 말이나 될법한 소리에요?”
루나의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잔소리. 진은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돌리면서 어떻게든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했고, 거기에 발끈한 루나는 더욱 더 잔소리를 퍼부었지만 진에게는 하등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거 크더니 잔소리꾼이 다 됐군.’
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린 채, 짐을 챙기러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결국 아바론을 나선 것은 정오가 다 되어 갈 무렵이었다. 루나는 진이 늑장을 부려서 그런 것이라고 열심히 잔소리를 했지만 진은 그냥 멋쩍은 웃음만 지으면서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그런데 목적지는 어디에요?”
“일단은 토레이나.”
“그곳은 항구도시 아닌가요?”
“그래. 그 친구에게 가려면 걷는 것 보다야 배를 타는 편이 빨라서 말이지.”
“친구라는 사람이 어디에 사는데요?”
“들으면 놀라서 자빠질걸.”
그렇게 말하고 대답을 안 해주는 진. 루나는 궁금한 마음에 더 물어봤지만 진은 단지 말해주면 안 가려고 할 것이 분명할거라고 말하면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런 그의 태도에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는 그녀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본인이 말해주기 싫다는데. 더군다나 강제로 입을 열게 할 방법이 지금의 루나에게는 없었다.
한참을 걸어가던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길 가에 주저앉았다. 엘프나 수인족이 인간보다 다리가 튼튼하다고 해도 일정시간 이상 걷게 되면 자연히 지치게 마련이다. 둘은 그냥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아 조용히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자, 적당히 쉬었으면 다시 가 볼까.”
한참 뒤에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진이었다. 루나는 아무런 말없이 엉덩이를 툭툭 털면서 일어났고 진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준 다음 가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신의 등 뒤를 밟는 자에게 슬쩍 눈길을 한번 주고는.
“이런~. 생각보다 철저히 경계하고 있군요.”
두 사림의 뒤를 쫓는 자는 다름 아니 어제 밤 진과 마주친 그 흑의인. 그는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아주 조용히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일단 녀석들에게는 협력해야 하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그건 어찌되는 상관없어. 과연 운명의 여신이 엮어놓은 사슬을 당신들이 풀 수 있을지 두고 봐야겠군요.’
그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두 사람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밤이 되었지만 마을에 도착하지 못한 진과 루나는 어쩔 수 없이 노숙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봤자 텐트나 그런 것을 친다는 게 아니라 바닥에 적당히 낙엽이나 푹신푹신한 것을 깔고, 그 위에 모포를 깔고 되는대로 잠을 청할 뿐이었지만.
모닥불을 피우고 마주 앉은 두 사람. 낮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라, 어색한 침묵만을 지키고 있을 뿐,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정말 우연이야. 너랑 다시 만난 건.”
먼저 망을 꺼낸 것은 진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내뱉은 말이기는 했지만 그 말 속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루나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저희가 다시 만날 확률은 없는 거나 다름없었을 텐데요.”
“뭐, 운명의 여신이 우연이라는 것을 이용해 장난이라도 쳤나보지.”
“아저씨는 운명을 믿어요?”
“그다지. 그냥 일이 안 풀리면 투덜거리면서 씹는 단어 밖에 안 돼.”
“아저씨도 그럴 때가 있군요.”
“내가 뭐 엄청난 운의 소유자도 아니고 말이지. 그냥 평범한 수인족일 뿐이야.”
“저는 지금까지 제 운명이 이런 거구나 하고 한탄하기만 했어요.”
“운명을 한탄할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돌파구를 생각해. 그게 더 이득이 크니까.”
“그런가요?”
“그런 거야.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바로는 그래.”
이럴 때 만큼은 진이 의지가 된다. 먼저 세상을 살아오고, 격동의 시간을 건너온 인생의 선배로서, 그리고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동료로서.
“오늘은 걷기도 많이 걸었으니까 일찍 자 두는 것이 좋을 거야.”
“설마 또 늦게 일어나는 건 아니겠죠?”
“그 이야기는 그만해.”
“우후훗~. 알았어요. 잘 자요~.”
“그래. 좋은 꿈 꿔라.”
모포를 덮고 누워 밤하늘을 조용히 바라보는 진.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빛에 자신도 모르게 감상적이 되다가 이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예의 따라온 자가 가까이 왔기 때문에. 그는 살짝 몸을 일으켜 상대방이 있는 곳을 살짝 바라봤다. 코끝에 미미하게 걸리는 향수냄새로 판단하건데 어제의 그 녀석이 분명하다고 판단했지만 가벼이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일단은 루나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처리하면 되는 일.
‘어제의 일로 보면 괜한 싸움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렇지만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혹시라도 돌변해서 달려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는 조용히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었다.
루나가 완전히 깊은 잠에 빠진 걸 확인하고 나서야, 진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일단 그녀가 자는데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할 생각이기는 하지만 깨어난다고 해도 불가항력이다. 엘프의 귀는 인간이나 수인족에 비해 월등히 밝으니까,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다만 깊은 잠에 빠지면 작은 소리에는 반응하지 않으니 그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역시나 눈치 채고 계셨군요.”
“그렇게 대놓고 따라오면 누구라도 알아차려.”
“이렇게 해서 들킨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긴 말은 필요 없다. 네놈의 확실한 목적은 뭐냐? 적이냐, 아니면 아군이냐?”
“이런, 이런. 그렇게 적, 아군으로만 생각하면 곤란하죠. 세상에는 중립이라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럼 네놈의 목적이 뭐야? 왜 우리를 졸졸 따라오는 거지?”
“저는 단지 보고 싶을 뿐이랍니다. 운명의 사슬에 엮인 자들과 루시펠이라는 존재가 과연 어떠한 존재인지를.”
“그래서 이렇게 미행하는 건가?”
“일단 이 옷을 입고 있는 조직에 대한 겉보기식의 충성이라도 보이는 것이죠.”
무언가 비밀이 많은 것 같은 눈앞의 존재. 진은 일단 적이 아니라는 것에 약간 안심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이런 부류의 존재들은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까. 어쩌면 최악의 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적이 아닌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네놈이 내 적이라고 판단되면 그 때는 내 전력을 다해서 너를 치겠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요. 그럼 편히 쉬시길. 잔챙이들은 이미 처리했습니다.”
“고맙군. 아, 그리고 궁금한 것이 있는데.”
“뭐죠?”
“네놈, 남자냐? 아니면 여자야?”
# by | 2007/05/31 14:04 | └Wheel of fortune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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