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목이 말랐는지 제법 큰 컵에 담긴 주스를 단번에 반 이상 마신 다음 숨을 고르면서 정신을 챙겼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리 나오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는 레피나와
루나. 그리고 자신들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커다란 덩치의 사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의논하는 둘이었지만 계속 술만 마시는 모습으로 봐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다 마시고 어느 정도 제정신으로 돌아온 넷은 다시금 바깥으로 나와 시장을 돌아다녔다. 슬슬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라 그런지 마을로 들어오는 캐러밴들이 모습이 보였고 곧바로 흥정을 벌이는 사람들과 물건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나 사람들은 어디서나 치열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넷. 넷은 자신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정말, 편하게 사는 아가씨들이네.”
“골탕 먹이고 올까요?”
“내버려둬. 어차피 어디의 팔불출 아저씨가 나설 거니까.”
프레시아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마리는 눈만 깜빡일 뿐이었고 프레시아는 가볍게 웃으면서 근처의 가게에 들러 사막의 특산물이라는 전갈튀김을 한 봉지 사들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했다.
잠에서 깬 진과 루프트, 키바는
여자들이 바깥으로 나간 것을 알고는 별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 나갈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어차피 날이 슬슬 저물고 있어서 저녁식사를 할 타이밍이기도 했고, 멋대로 나간 여자들도 잡아서 훈계도 할 생각을 진은 가지고 있었지만 키바와 루프트는 그럴 생각은 없었다.
바깥으로 나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니 흰색
모자를 쓴 네 사람이 보여 바로 달려가는 남자들. 예상대로 넷은 루나와 레피나, 그리고 아이들 두 명이었고 모두들 손에 하나씩 꼬지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냥 기운이 빠져버려 진은 저녁 먹을 건데 그런 군것질해도 괜찮겠느냐는 말을 했고 넷은 간식 들어가는 배는 따로 있다고 말을 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진은 내일 일찍 출발할 거니 일어날 수 있게 오늘은 다들 일찍 자두라고 했고 키바와 루프트는 낮잠을 자서 잠이 잘 안올 것 같다고 대꾸를 하자 기절시켜서라도 재워주겠다는 진의 말에 얼굴이 굳어졌다.
“뭐, 무거운 것들은 다 남자들 몫이니까 그리 알아두고, 각자 사막에서 무슨 일 안 생기게 주의해라. 보기보다 사막에는 위험요소가 많다.”
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키바. 사실 과거 전쟁 당시 진과 키바는 이 사막에서 길을 잘못 들어 해매는 바람에 부대원 전원이 빈사상태가 되어서 근처를 날아가던 블루드래곤에게 부탁해 겨우겨우 살아난 경험이 있었다. 그런 만큼 이번에는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잇었다.
진 일행이 그러는 동안 프레시아와 마리는 벌써부터 레기오스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참을 갈 거라고 생각한 두 사람의 예상과는 달리 레기오스가 직접 부하를 불러 마중을 나간 덕분에 둘은 별 어려움 없이 그의 아지트로 방문할 수 있었다.
레기오스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자 어느새 다소곳한 여성의 모습으로 변해 있는 그가 두 사람을 맞았다. 그걸 보면서 원래 남자가 아니었냐고 묻는 프레시
아에게 실례의 말은 하지 말라고 하는 레기오스. 프레시아는 한참 기억을 더듬다가 손을 탁 치면서 생각이 났다는 듯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오랫동안 얼굴을 안보니 그만 잊어버렸지 뭐야? 미안해.”
“그럴 수도 있지. 네 옆에 있는 건 부하야?”
“응. 말도 잘 듣고 밤의 파트너이기도 해.”
“그렇군. 어쨌든 앉아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자. 쌓인 이야기 거리도 많고.”
그러면서 레기오스가 손을 튕기니까 어느 틈에 인간의 모습을 한 블루 드래곤들이 테이블과 의자, 차와 찻잔에 과자까지 세팅을 마쳤다. 그걸 보면서 여전하다고 말하는 프레시아와 신기한 눈빛으로 보는 마리. 그런 마리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한 블루 드래곤이 마리에게 어딜 함부로 보는 거냐고 말을 했다가 레기오스에게 맞고 벽에 처박혔다.
“내 손님에게 행패부리지 마라. 똘마니가.”
“보스 기질은 여전하네.”
“자, 앉아.”
프레시아와 마리는 약간 얼굴이 파랗게 질렸지만 레기오스는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의자에 앉아서 차를 한 모금 마신 다음 부하들에게 칭찬을 했다. 프레시아와 마리도 일단은 앉아서 차를 한 모금씩 마셨는데 놀랍게도 상당한 수준의 향과 맛이 담겨 있는 차였고 둘은 감탄했다. 그 모습에 그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먼저 말을 꺼냈다.
한참 이야기를 하면서 대충 진 일행에 관해 파악한 레기오스. 그녀는 다리를 꼬고 앉아 고개를 끄덕이면서 프레시아가 하는 이야기를 듣던 중 더스트라는 이름을 듣자 갑자기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원한이 안 풀린 거냐는 말에 어떻게 그 원한을 잊어버리겠느냐고 말하는 레기오스. 사실 그녀뿐만 아니라 지금 살아있는 고대룡 전부가 더스트에게는 나름의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에레고로스는 더스트의 몸을 서서히 붕괴시키는 치명적인 독을 주입해 놔서 그 원한을 어느 정도 풀었지만 다른 드래곤들은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면서 더스트가 모습을 드러내기를 바라고 있었다.
모두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진과 키바는 마지막 준비까지 다 마친 다음 제일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물론 그것이 결코 늦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일 일어날 시간을 생각하면 조금은 늦은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더스트는 날이 갈수록 자신의 몸이 점점 버티기 힘들어 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약으로 억제하고 있지만 고대룡의 독은 신조차도 영원한 고통에 시달리게 만드는 물건이니까 그리 쉽게 해독하는 것은 무리였다.
“제길 에레고로스 녀석!”
지난번 대전의 마지막에 그 드래곤이 독을 잔뜩 머금은 자신의 이빨을 단검으로 변화시켜 찌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처음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독은 점점 더 그의 몸을 망가뜨리고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약을 조합해서 지금까지 버티는 것은 가능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새로운 육체를 손에 넣는 것 또한 중요했다.
“일단은 임시로 적당한 녀석의 몸을 차지하는 수밖에 없어.”
그는 그렇게 중얼거린 다음 부하들을 불러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고 부하들은 의문을 나타내면서도 일단은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 위해 방을 나갔다.
해가 뜨기 전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는 진 일행. 여관 대금을 다 주고 난 다음 짐을 챙겨 떠나는 그들. 남자들만 큰 짐을 지고 있는 것 같아 보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식량과 물통을 남자들이 매서 그런 것일 뿐 이번의 여정은 상당히 가벼운 모양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런 진 일행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레기오스에게 알린 다음 움직이기 시작하는 블루 드래곤들. 어지간하면 눈에 띄지 않는 캐러밴의 모습으로 다들 변장을 하고 우연을 가장해 진 일행과 마주쳤다.
“어라? 모험가들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이거 마침 잘 됐군요. 사실은 저희가 가려고 하는 길에 요즘 도적들이 흉흉하게 출몰한다는 소식을 들어서 말이죠.”
그렇게 말하면서 그럴 듯하게 이야기를 하는 블루 드래곤. 진은 어떻게 할 지 일행에게 물어봤고 일행은 가는 길이 다르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그 말에 지도를 펼쳐 보이며 자신들은 보통의 캐러밴과는 다른 루트로 간다고 하는 그들. 진은 그들이 펼친 지도와 자신이 든 지도를 살펴보더니 방향이 비슷하여 같이 따라가 주기로 했다.
“그런데 물건은 안 보입니다?”
“이번에는 다른 곳에서 사올 예정이거든요. 짐은 낙타에 얹으시죠.”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진 일행. 블루 드래곤 패거리는 다행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진 일행과 함께 자신들의 아지트를 향해 출발을 했다. 물론, 진 일행은 가는 길이 레기오스가 있는 곳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저 오아시스를 최소한으로 들르는 조금 극단적인 단거리 루트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진 일행이 출발하는 모습을 수정구로 보면서 오래간만에 흥분에 들떠 부하들에게 준비를 단단히 해 두라고 말하는 레기오스. 프레시아는 그걸 보면서 오래 살더니 참 별나졌다라고 했고 레기오스는 어쩔 수 없다고 말대꾸 하면서 오히려 멀쩡한 프레시아가 대단하다고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육체를 바꾸면서 어떻게 제 정신을 유지하느냐고 묻는 그녀의 질문에 프레시아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자신도 사실은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네 부하는?”
“아, 오늘 젊은 애 하나랑 같이 방에 들어가서 안 나오던데? 그 아이, 보기보다 무서운 아인데 괜찮으려나?”
프레시아의 말에 표정이 굳는 레기오스. 물론, 혈기왕성한 젊은 남녀가 함께 있는 것을 뭐라고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안 나오고 있다는 것에서 혹시나 그 젊은 블루 드래곤이 먹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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